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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잡다한 것

불꽃을 던진 사나이

by TDRemon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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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네이버를 보다가 낯익은 한 남자를 보았다. 비정상이라고 말하면 대단히 실례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고 절대 타협이란 없을꺼 같은 똑바른 눈과 그래픽으로 처리된 왼손을 따라 흐르는 빨간 선들...

그의 이름은 Rand Johnson(본명 : Randall David Johnson).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나는 사물에 맺힌 인간의 혼을 볼 수 있었다. 2m가 넘는 높은 곳에서 내리 꽂히는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슬라이더... 그건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치 않다고 느낀다.

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 었던 팀은 누가 뭐래도 애리조나 다이몬드백스 였다.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 김병현이 같이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다이아몬드백스...

스포츠 매거진이 너무 잘 나와 있어서 따로 스크랩을 안하고 바로 같다 붙이겠다. 정확한 링크는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214&issue_item_id=7505&office_id=224&article_id=0000001235
이 되겠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이 정점에 도달하는 나이는 만 29세다(역대 사이영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29.8세다). 정점에 오른다는 것은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9세는 투수들의 하락세가 시작되는 나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야구선수라 하기에는 너무 큰 키와 너무 긴 팔, 깡마른 몸매를 가진 투수가 있었다. 스웨덴의 높이뛰기 선수인 패트릭 스요베리와 같은 외모의 그는, 엉망이었던 제구력 탓에 28세 시즌까지 49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남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29살부터, 그는 맹렬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나이로 마흔일곱이 된 올해, 불가능할 것 같았던 300승을 달성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투수, 랜디 존슨(45)이다.


208cm

아버지로부터 큰 키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존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미 키가 지금과 같은 208cm에 이르렀다. 미네소타 출신 경찰관이었던 존슨의 아버지는 키가 198cm였고 야구와 스키점프를 즐기는 스포츠광이었다.

1982년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는 존슨을 4라운드에서 지명했다. 그리고 당시 4라운드 계약금으로는 파격적인 5만 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존슨은 아버지와 코치의 조언에 따라 프로가 아닌 대학을 택했다. 그렇게 90년대 최고의 좌완 2명이 같은 팀에서 출발하는 역사적인 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존슨의 전공은 미술(fine arts)이었다. 그는 학교 밴드의 드럼 연주자였으며, 록 잡지를 만드는 일도 했다. 또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꿈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그가 진학한 USC에는 1년 선배 마크 맥과이어가 있었다. 1학년 때 투수와 타자를 병행했던 맥과이어는 존슨이 들어온 후부터 타자에 전념했다. 3학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존슨은 드래프트에 나올 투수 중 4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존슨은 부담감에 시즌을 망쳤고 평가도 급락했다.

B J 서호프(1순위 밀워키) 윌 클락(2순위 샌프란시스코) 바비 위트(3순위 텍사스) 배리 라킨(4순위 신시내티) 등 LA 올림픽 멤버들이 쏟아져 나온 1985년 드래프트에서, 존슨은 비정상적인 키를 제외하고는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파격적으로 그를 전체 34순위에서 지명했다.

존슨은 최고의 강속구와 함께 최악의 제구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마이너리그 시절 존슨은 10개의 삼진을 잡아내 구단 관계자들을 환호케 하다가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10개의 볼넷을 내줘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1987년 존슨은 더블A에서 140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16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리고 128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서울올림픽 개최 하루 전인 1988년 9월16일. 존슨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 나서 5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존슨은 1940년대에 나타났다 통산 7승으로 사라졌던 자니 지(Gee)의 역대 최장신 기록을 1인치 경신했다.

그렇다고 제구 문제가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1989년 몬트리올은 존슨이 29⅔이닝 26볼넷 26삼진을 기록하자, 뉴욕 메츠가 놀란 라이언을 포기한 것보다, LA 다저스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포기한 것보다 훨씬 빨리 존슨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당시 포스트시즌에 도전했던 몬트리올은 존슨을 포함한 유망주 4명을 내주고 시애틀에서 사이영상급 좌완인 마크 랭스턴을 데려왔다(그로부터 4년 후, 몬트리올은 새로운 괴물을 얻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였다).

1991년 존슨은 1977년 놀란 라이언(204개) 이후 가장 많은 152개의 볼넷을 내줬다. '키가 6피트6인치(198cm) 이상인 투수는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하다'는 스카우트계 격언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타자들의 공포 ⓒ gettyimages/멀티비츠

1992년
1992시즌 중반, 경기전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놀란 라이언은 갑자기 큰 그림자가 지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존슨이었다. 당시 8연패에 빠져 있었던 존슨은 평소 존경했던 라이언을 보게 되자 눈을 딱 감고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라이언은 흔쾌히 돕기로 하고 전담코치 톰 하우스와 함께 분석에 들어갔다.

라이언과 하우스가 찾아낸 문제점은 공을 던지는 순간 내딛는 오른발의 뒤꿈치가 미세하게 3루 쪽으로 향한다는 것. 발을 홈 플레이트 쪽으로 내딛지 못한 존슨은 무게 중심이 자꾸 3루 쪽으로 쏠렸고, 그 때마다 암 앵글(arm angle)이 달라졌다. 제구 불안의 결정적인 문제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후 라이언을 야구 인생 최고의 은인으로 여기게 된 존슨은 1993년 라이언이 은퇴 경기를 치르자,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이제부터는 자신이 대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라이언의 등번호인 3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존슨의 또 다른 문제는 불같은 성질이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존슨은 왼 손목에 타구를 맞은 후 교체된 적이 있는데, 손목이 부러진 것으로 지레짐작한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오른손 주먹으로 벽을 쳤다. 하지만 검사 결과 손목은 단순 타박상이었다. 대신 존슨은 오른손에 깁스를 했다. 마운드 위에서 존슨은 너무 쉽게 흥분했고 또 분노했다. 분노의 상당 부분은 동료들에게로 향했다.

이 때 또 다른 은인이 나타났다. 스티브 칼튼이었다. 1972년 59승 팀에서 27승을 거두는 등 꼴찌 팀의 에이스 자리를 묵묵히 지켜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까지 차지한 칼튼은 존슨에게 중요한 한마디를 했다. 동료들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료들을 위해 있는 것. 지금까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존슨은 칼튼의 말에 무릎을 쳤다. 칼튼의 조언 이후, 존슨의 동료들은 더 이상 실책 후에 있었던 존슨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게 됐다.

그 해 12월, 운명적인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존슨은 개인 훈련을 하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크게 자책, 가족들에게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한 마지막 당부를 전해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존슨은 이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존슨은 자신의 글러브에 같은 아버지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9살의 너무 늦은 나이에, 존슨은 다시 시작했다. 존슨은 라이언의 기술적 조언과 칼튼의 심리적 조언을 완벽히 수행했다. 이에 라이언 다음으로 많은 삼진을 잡아낸 투수, 칼튼보다 더 많은 삼진을 잡아낸 좌완이 됐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했던 약속을 지켜냈다.

그를 볼 수 있었던 건 행운 ⓒ gettyimages/멀티비츠

1993년 - 1987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300K를 달성한 투수가 되다. 1972년 칼튼 이후 처음으로 300K를 달성한 좌완이 되다.

1995년 - 1987~1990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탈삼진 4연패에 성공한 투수가 되다. 매덕스(19승2패)와 함께 역대 최초의 200이닝 이상 9할 승률(18승2패)을 만들어내다. 첫번째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첫번째 사이영상을 따내다.


1997년
- 첫번째 20승을 달성하다. 역사에 남은 활약으로 팀의 첫번째 포스트시즌 진출과 디비전시리즈 승리를 이끌다.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2위.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존슨에게 당한 양키스가 시즌 후 존슨의 트레이드를 타진하다. 시애틀이 마리아노 리베라와 앤디 페티트를 요구하다.

1998년 - 재계약이 무산된 시애틀에서 맥빠진 시즌을 보내다.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11경기에서 10승(1패 1.28)을 따내다. 2번째 300K를 달성하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과 가까운 애리조나를 선택하다.

1999년 - 역대 5위에 해당되는 364개의 삼진을 잡아내다. 한 시즌 23번의 10K 경기를 만들어내다(라이언과 타이). 1987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내셔널리그 투수가 되다. 2번째 사이영상을 차지하다. 마르티네스와 함께 양 리그 사이영상을 차지한 역대 2,3호 투수가 되다(1호 게일로드 페리, 4호 클레멘스).

2000년 - 사이영상 2연패에 성공하다. 마지막 경기 부진(3⅓이닝 8자책)으로 평균자책점이 2.38에서 2.64로 올라 평균자책점-탈삼진 동반 2연패에 실패하다(1위 케빈 브라운 2.58). 3년째 좌타자에게 홈런을 맞지 않다.
 
2001년 - 스프링캠프에서 비둘기를 잡다. 역대 3위에 해당되는 372삼진을 만들어내다. 4년 연속 300K를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되다. 3년 연속 23번의 10K 경기를 만들어내다. 클레멘스(2회)와 우드에 이어 역대 4번째 20K를 달성하다. 9이닝당 13.4K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다. 사이영상 3연패에 성공하다. 1968년 미키 롤리치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3승 투수가 되다.

2002년 - 매덕스에 이어 사이영상 4연패에 성공한 2번째 투수가 되다. 5년 연속 300K를 달성한 최초의 투수가 되다. 6번째 300K를 달성, 라이언과 타이를 이루다. 1972년 칼튼에 이어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좌완이 되다. 1996년 스몰츠 이후 24승째를 따낸 첫번째 투수가 되다. 본즈, 존슨과의 38번째 대결 만에 첫 홈런을 때려내다(통산 3홈런).

2004년 - 9번째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다.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시즌을 보내고도 16승14패에 그쳐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그치다. 클레멘스와의 투표 대결에서 2번째 패배를 당하다. 사이 영이 1904년에 세웠던 37세37일의 최고령 퍼펙트게임 기록을 갈아치우다(40세251일).

나이 경기 ERA 이닝 탈삼진 K/9 AVG
1988 24  4  3  0 2.42  26  25  8.7 .225
1989 25 29  7 13 4.82 160.2 130  7.3 .248
1990 26 33 14 11 3.65 219.2 194  7.9 .216
1991 27 33 13 10 3.98 201.1 228 10.2 .213
1992 28 31 12 14 3.77 210.1 241 10.3 .206
1993 29 35 19  8 3.24 255.1 308 10.9 .203
1994 30 23 13  6 3.19 172 204 10.7 .216
1995 31 30 18  2 2.48 214.1 294 12.3 .201
1996 32 14  5  0 3.67  61.1  85 12.5 .211
1997 33 30 20  4 2.28 213 291 12.3 .194
1998 34 34 19 11 3.28 244.1 329 12.1 .224
1999 35 35 17  9 2.48 271.2 364 12.1 .208
2000 36 35 19  7 2.64 248.2 347 12.6 .224
2001 37 35 21  6 2.49 249.2 372 13.4 .203
2002 38 35 24  5 2.32 260 334 11.6 .208
2003 39 18  6  8 4.26 114 125  9.9 .280
2004 40 35 16 14 2.60 245.2 290 10.6 .197
2005 41 34 17  8 3.79 225.2 211  8.4 .243
2006 42 33 17 11 5.00 205 172  7.6 .250
2007 43 10  4  3 3.81  56.2  72 11.4 .245
2008 44 30 11 10 3.91 184 173  8.5 .260
2009 45 11  5  4 5.12  58  56  8.7 .262
607 300 164 3.29 4097.1 4845 10.7 .220

가장 극적인 300승?
클레멘스가 28세 시즌까지 따낸 승수는 134승. 매덕스는 131승, 톰 글래빈은 108승이었다. 존슨은 클레멘스보다 85승, 매덕스보다 82승, 글래빈보다 59승이 늦었던 것. 1900년 이후 데뷔한 16명의 300승 투수는 28세 시즌까지 평균 114승을 기록했다. 존슨은 이들보다 무려 65승이 적었다.

존슨보다도 늦었던 투수가 딱 1명 있다. 광부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너클볼을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고 28살이 되어서야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필 니크로다. 니크로가 28세 시즌까지 거둔 승수는 17승이었다.

군복무 때문에 데뷔가 늦었던 워렌 스판(65승) 마이너리그 팀에서 붙잡고 놔주지 않아 25살에 데뷔한 레프티 그로브(67승) 27살에 스핏볼을 완성한 게일로드 페리(60승)도 출발이 늦었다. 하지만 존슨보다는 빨랐다. 존슨은 니크로 다음으로 출발이 늦었으며, 유일하게 5인 로테이션 시대에 그 일을 해냈다.

300승 투수들의 달성 시점 나이
달성 연도    달성 나이
퍼드 개빈   1888      31세
팀 키페   1890      33세
미키 웰치   1890      31세
찰스 레드번   1891      36세
존 클락슨   1892      31세
키드 니콜스   1900      30세
사이 영   1901      34세
크리스티 매튜슨   1912      32세
에디 플랭크   1916      41세
월터 존슨   1920      32세
피트 알렉산더   1924      37세
레프티 그로브   1941      41세
워렌 스판   1961      40세
얼리 윈   1963      43세
게일로드 페리   1982      43세
스티브 칼튼   1983 38세 275일
톰 시버   1985      40세
필 니크로   1985 46세 188일
돈 서튼   1986      41세
놀란 라이언   1990      43세
로저 클레멘스   2003 40세 313일
그렉 매덕스   2004 38세 115일
톰 글래빈   2007 41세 133일
랜디 존슨   2009 45세 265일

눈앞에서 뿌리다 ⓒ gettyimages/멀티비츠

역대 최고의 좌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완은 최고의 타고투저 시대를 보낸 그로브다. 그로브의 통산 평균자책점은 3.06으로 23명의 300승 투수 중 13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정 평균자책점으로 따지면 월터 존슨(147)을 넘어서는 역대 1위다(148).

존슨의 조정 평균자책점은 136으로 그로브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200승 이상을 달성한 26명의 좌완 중 존슨보다 조정 평균자책점이 좋은 투수는 그로브뿐이다(3위 화이티 포드 133). 데뷔하자마자 탈삼진 7연패에 성공한 그로브는, 그러나 32세 시즌부터는 1개도 추가하지 못했다. 반면 31세 시즌까지 4개를 따낸 존슨은 32세 시즌 이후로도 5개를 더 추가했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좌완은 샌디 코팩스다. 코팩스는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보낸 '황금의 4년' 덕분에 통산 165승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 4년간 코팩스는 172의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존슨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간 177의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은 188이다. 코팩스가 뛴 다저스타디움이 투수의 천국이었던 반면, 존슨은 좁디 좁은 킹돔과 고지대의 뱅크원볼파크에서 뛰었다.

존슨은 그로브 못지 않게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코팩스 만큼이나 화려했다.

90년대 최고의 투수?
마르티네스는 그로브를 유일하게 앞서는, 역대 200승 투수 최고의 조정 평균자책점(154)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214승에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354승을 거뒀으며 그로브와 월터 존슨(147)에 이은 300승 투수 조정 평균자책점 3위(143) 클레멘스는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투수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약물이라는 불명예가 새겨졌다.

매덕스가 올린 355승은 클레멘스와 달리 깨끗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매덕스는 사이 영보다도 더, 역사상 가장 꾸준했던 선발투수다. 하지만 그는 안정성을 위해 화려함을 포기했다(조정 평균자책점 132, 300승 투수 9위).

우리가 지켜본 4인방 중 가장 위력적인 투수는 마르티네스였다. 가장 안정적인 투수는 매덕스였다. 존슨은 마르티네스보다 덜 위력적이고(그렇다고 볼 수도 없지만), 매덕스보다 덜 꾸준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스보다 더 꾸준했고, 매덕스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클레멘스를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면 그렇다.


마지막 300승?

300승은 결코 흔한 장면이 아니다. 1970년대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며, 1990년대에는 라이언 만이 성공했다(우리가 4번이나 보게 된 건 단지 운이 좋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존슨 이후 역대 25번째 300승은 나올 수 있을까. 마이크 무시나가 270승에서 멈춰서면서, 존슨이 마지막 달성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수는 요한 산타나다. 하지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16.5승을 올린 산타나는, 올해부터 40세 시즌인 2019년까지 11년간 연평균 17승을 거둔 후, 4승을 더 추가해야 300승에 도달할 수 있다. 존슨(219승) 클레멘스(191승) 매덕스(190승) 그리고 제이미 모이어(203승)가 31세 시즌 이후 174승 이상을 따냈지만, 선발투수가 승리를 챙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CC 사바시아는 올시즌을 18승으로 마감할 경우 28세 시즌을 135승으로 끝내게 된다. 이는 클레멘스보다도 1승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바시아의 롱런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존슨을 마지막으로, 적어도 앞으로 10년 간은 300승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8cm 투수, 어떻게 작동할 수 있었나
지렛대는 길면 길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긴 대신 강도가 약하다면 차라리 길지 않으니만 못하다.
 

투수에게도 큰 키와 긴 팔은 유리하다(팔이 길면 손가락도 길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큰 키와 너무 긴 팔은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길이의 팔과 다리가 제대로 된 근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존슨에 앞서 등장한 장신 투수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문제를 보이고 사라졌다. 존슨은 하늘이 내려준 신체를 갖고 태어난, 운이 좋은 투수가 아니었다.

존슨은 고교 시절 농구선수로도 뛰어났다. 하지만 무릎이 약해 오래 뛸 수 없었다. 하체를 이용한 피칭 역시 할 수 없었다. 이에 존슨은 팔을 뒤로 제치는 테이크 백 동작을 남들보다 크게 하는 것으로 공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이드암 모션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는 상체에 엄청난 무리를 가져오는 동작이다. 실제로 시애틀은 존슨과 똑같은 키의 라이언 앤더슨을 뽑아 존슨의 매커니즘을 주입했다. 하지만 앤더슨은 메이저리그에도 올라오지 못하고 쓰러졌다. 오직 존슨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버텨낼 수 있는 상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존슨의 너무 큰 키(208cm)와 너무 긴 팔(96.52cm)이,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최고의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땀 덕분이었다. 손가락이 세 개였던 모데카이 브라운이 세 손가락으로 던지는 마구를 만들었던 것처럼.

존슨이 공포시대를 열자 스카우트들도 존슨만큼 큰 키를 가진 투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풀었다. 이에 마크 헨드릭슨(206cm)과 크리스 영(208cm)이라는 농구선수 출신 투수들이 등장했다. 존 라우시(211cm)는 존슨을 제치고 역대 최장신 투수가 됐다. 하지만 존슨만큼 위력적인 장신 투수는 나오고 있지 않다.

그는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노력으로 답했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불꽃은 살아있다. 그의 심장 속에 ⓒ gettyimages/멀티비츠

랜디 존슨(Randall David Johnson)

1963년 9월10일 캘리포니아주 Walnut Creek 출생
198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34순위 지명

300승 - 역대 24번째
4845탈삼진 - 역대 2위 (놀란 라이언 5714개)
300K 6회 -역대 공동 1위
10K 경기 212회 - 역대 2위 (놀란 라이언 215회)
9이닝당 10.7K - 1위(2위 2000이닝+ 페드로 10.1, 3000이닝+ 라이언 9.5)

조정 평균자책점 136 - 300승 달성자 역대 6위
승률 .647 - 300승 달성자 역대 5위

사이영상 5회 - 역대 2위 (로저 클레멘스 7회)
2002년 트리플 크라운 
2001년 월드시리즈 MVP

평균자책점 1위 - 4회 (2위 3회)
다승    1위 - 1회 (2위 3회)
탈삼진   1위 - 9회 (2위 3회)
피안타율  1위 - 6회 (2위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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